2차세계대전 미군 의 동남아 전략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43년 초 일본제국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말레이반도와 버마, 필리핀 제도를 비롯해 현재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를 점령했습니다. 이 지역들은 석유와 고무 등 주요 물자의 공급지였습니다.
위의 빨간색이 당시 일본의 영토입니다.
미국은 일본의 문호를 차단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이 점령한 영토를 빼앗아 물자 보급선을 끊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숨통을 조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태평양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기동전이 필요했습니다. 항공모함에서 띄운 항공기가 지원하는 상륙 작전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의 화력에 대응할 힘이 없었던 일본은 점점 더 절박한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군인의 명예’라는 미명 아래 자살 부대를 만든 것입니다. 이로 인한 인명 손실은 엄청났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고 대일본 제국 건설이란 야망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1943년 봄 미군 사령부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일본 격퇴를 위한 작전으로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스타일의 미 육군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는 당시 남서 태평양의 미군과 호주군 사령관으로 육로를 통한 공격을 선호했습니다.
위의 화살표같이 진격해 나가는 것인데요. 솔로몬 제도, 파푸아뉴기니와 필리핀을 점령한 다음 이들을 장벽으로 삼아 일본이 새로 점령한 버마와 말레이반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를 차단해서 일본의 숨통을 조이려고 했습니다. 또한 이 작전으로 과거의 빚도 청산하려고 했습니다. 전쟁 초반 맥아더는 일본군에 쫓겨 필리핀에서 물러나면서 필리핀을 해방하러 돌아오겠노라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미 해군의 작전은 달랐습니다.
위의 화살표가 미 해군의 작전인데요. 삼엄한 방어를 하는 솔로몬 제도와 파푸아뉴기니, 필리핀은 피해 가고자 했습니다. 대신 일본 본토와 가까운 태평양 중부의 작은 섬들을 점령할 계획을 짰습니다.
장벽을 만드는 대신 전략적 기지를 확보한 뒤 일본의 보급선을 차단하자는 거였습니다. 이 방법이 훨씬 바르고 경제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차세계대전 미군 사령부는 결정을 뒤로 미뤘습니다. 육군과 해군에게 동시에 출격 허가를 내렸습니다.
1943년 6월에 맥아더 장군의 작전이 수행되었습니다. 일명 ‘카트 휠’ 작전이었습니다. 첫 목표는 솔로몬 제도의 뉴브리튼섬에 있는 라바울 일본군 기지였습니다.
2차세계대전 미군의 육군이 솔로몬 제도를 손에 넣는 동안 미 해군은 거대한 함대를 조직했습니다. 여기엔 새로운 에섹스급 항공모함 4척도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이전 기종보다 크고 빨랐습니다. ‘핼캣’이나 ‘콜세어’등 뛰어난 신형전투기들이 항공모함에 장착되었습니다. 해군의 첫 목표는 일본군이 주둔하는 타라와 환초와 길버트 제도의 마킨 섬이었습니다. 1943년 11월경입니다.
2차세계대전 미군은 위의 맥아더 장군 안과, 미 해군 안 2개를 동시에 진행하는데요. 맥아더 장군 안은 육지전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미군의 희생도 컸습니다. 그래서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일본 본토에 미 육군이 들어가지 않고 핵폭탄을 터트린 것입니다.
이상 2차세계대전 미군의 동남아 전략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전체주의는 권력자 잘살기 위해 일반 평민들 자살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보통 시민들이 대다수인 우리는 전체주의를 경계해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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