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한니발 에 대해 알아봅시다



카르타고 한니발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세계 최강국 로마 본토에 들어가 로마를 위협했던 장군 한니발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명장이지요. 한니발이 바로 카르타고 장군이었습니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3세기경 지중해 연안에 있던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로마의 라이벌이고, 로마에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였는데요. 그래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위의 지도에서 녹색 지역이 카르타고의 영토이고 주황색이 로마영토 입니다. 로마보다 더 큰 것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 위의 밑에 사진은 카르타고의 현재 위치에 있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모습인 듯합니다.

 


 

하밀카르 바르카는 카르타고의 장군이었는데요. 카르타고의 대표 장군이었습니다. 스페인지역을 카르타고에 복속시킨 장군이 바로 하밀카르 바르카입니다. (기원전 270 ~ 228)

하밀카르 바르카의 8살 난 아들은 아버지에게 스페인과의 전쟁을 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로마를 영원히 증오하고, 언젠가 그들을 무찌를 것을 약속받고 동행을 허락했는데요. 그 아들이 바로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입니다.

로마공화국에 맞서게 될 가장 두려운 적 한니발은 이렇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211년 로마에는 두려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성벽 밖에서는 로마인들이 두려워하는 한니발 장군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니발 바르카는 기원전 247~ 183입니다. 영리하고, 용맹하며, 치밀한 장군 한니발은 로마 최대의 악몽이었습니다.

마술이라도 쓴 듯이 카르타고 한니발은 로마 방어선을 뚫었습니다.

한니발의 힘은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에서 비롯된 맹신적인 종교와 같은 로마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원전 221년 한니발은 26살에 카르타고의 총사령관이 되면서 힘을 얻습니다.

한니발은 뛰어난 정치가이며 전략가이자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점은 카르타고의 우수한 기술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바다를 장악한 상태에서 카르타고 한니발은 바다를 통해 로마에 진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을 통해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 본토에 진입하는 작전을 세우고 성공을 합니다.

한니발은 로마군과 비교해 수적으로 열세인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로마 본토에 직접 들어가 로마 소굴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기원전 218년 한니발은 9만 병력과 말 2,000,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출정합니다.

 



위의 사진은 한니발 흉상과, 코끼리를 이용한 전투 모습입니다.

코끼리는 이미 수 세기 이전부터 전쟁에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적의 기병대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그래서 한니발도 힘들게 코끼리들을 끌고 간 것입니다.   

 


 

21810월까지 약 1,000km 거리를 행군한 한니발 부대는 첫 번째 난관인 프랑스의 론강에 다다랐습니다. 론강은 강물의 폭이 가장 좁고 얕은 시기에도 폭은 150m에서 200m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건너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강 건너에서는 대규모 갈리아 군(원주민)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기도 쉽지 않았지만 카르타고에 순응하지 않은 많은 부족이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르타고 기술자들은 길이 60m, 폭은 15m 정도의 뗏목을 여러 개 만들어 많은 군사가 한꺼번에 론강을 건너는 것을 택했습니다.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강을 건너니까 강 건너에 있던 갈리아 군사들은 도망쳤습니다. 9일 만에 카르타고 한니발은 갈리아 군사들을 굴복시켰습니다.

한니발 부대는 진격을 계속해 알프스산맥에 다다랐습니다. 한니발 부대는 알프스산맥을 타고 올라가 알프스산맥을 넘은 게 아니라, 알프스산맥을 뚫어서 거기로 관통해 통과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21682일 이탈리아 남부 칸나이 부근에서 카르타고 한니발은 로마군과 격돌합니다. 한니발은 군사들은 5만 병력이었고, 바로가 이끄는 로마군은 9만 병력이었습니다. 바로가 있는 로마군은 대규모 인원을 통해 한니발 부대의 중앙을 무너트리려고 했습니다.

바로의 전략을 눈치챈 한니발은 기병대를 로마군의 후방에 포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군이 중앙으로 쳐들어올 때 포위해서 로마군을 다 죽였습니다.   

9만 로마 병력 중 3,500명 만이 목숨을 건졌고, 10,000여 명은 포로로, 전사자들은 7만에 달했습니다.

칸나이 전투는 로마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패배로 기록됩니다.

이후 카르타고 한니발의 전쟁은 13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한니발은 로마와 인근 도시들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지만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공성 무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204년 방어에만 주력하던 로마는 카르타고 지역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결국 한니발은 자국 카르타고를 지키기 위해 돌아와야 했습니다.

기원전 204년 스페인에서 카르타고를 무찌른바 있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한니발 제거를 위해 카르타고를 직접 공격할 것을 제안합니다. 한니발은 고국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고 양 진영의 위대한 장군이 모여 대화를 나누지만, 그 내용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원전 202년 둘은 자마전투에서 재회하고 한니발은 패배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항복을 강요받습니다.

그 후 카르타고에서 쫓겨난 한니발은 몇 년 후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로마와의 전투에서 계속 패한 카르타고는 결국 로마에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이상 카르타고 한니발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로마도 정말 강한데 그런 로마와 막상막하였던 카르타고란 나라가 있었군요.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건축물 등을 다 부수면서 농지로 만들어 카르타고 지역에서 밀 등을 대량 생산해서 식량 기지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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