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 시대 에 대해 알아봅시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83710대의 소녀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의 권좌를 차지합니다. 소녀의 집권은 대영 제국 전역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영국의 대중과 정부 모두 그녀가 철없고 변덕스러우며 왕이 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1819~1901)

 



위의 빨간색 부분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영토입니다.

겨우 18살일 때 왕위에 올라 처음 몇 년간은 어려움을 겪었고 대중에게 인기도 없었습니다. 철없는 18살의 빅토리아 여왕이 후에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위대한 군주로 성장하리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왕은 1840년 사촌 동생 앨버트 공과 결혼하면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여왕은 앨버트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절대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고 앨버트는 그녀의 의지처가 돼 주면서 그녀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당시 대영 제국은 북아메리카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팽창해있었습니다. 앨버트와 여왕은 제국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공학과 산업기술을 더욱 장려했습니다.

 



위의 사진이 전신 시스템 모습입니다. 저 장치로 모스부호를 이용하여 소통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제품이 바로 전신 시스템이었습니다. 제국은 세계 전역으로 퍼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전신(傳信)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대영 제국을 중심으로 전신 산업은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19세기 중반 156,000km의 전신 케이블이 세계를 뒤덮습니다.

 



위의 빨간색 부분이 대영 제국 영토이고, 검은색 선이 전신 케이블 모습입니다.

이제 단 몇 시간 만에 영국에서 인도까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고속 통신망이 설치된 것입니다. 덕분에 대영 제국은 전보다 더 효과적으로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기술적 신기원이 실현된 것입니다. 기술 발전은 제국의 통합뿐만 아니라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산업의 성장을 초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산업 생산성이 급증하면서 산업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19세기 초반, 1백만 명 정도였던 런던의 인구는 1850년대 두 배로 불어났습니다. 런던은 인구급증에 대비하지 못했고 심각한 주택난으로 시민들은 닭장 같은 곳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런던은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전염성 피부염 같은 위생 관련 질병들이 창궐하였습니다. 빗물 처리를 위한 하수구는 쓰레기로 넘쳐났고 오수는 정화될 틈도 없이 템스강으로 흘러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템스강을 런던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템스강은 런던 시민들의 상수원이었습니다. 2백만 런던 시민은 자신들이 버린 오물이 흘러 들어간 강물을 마셨습니다.   

1848년 대재앙이 런던을 강타합니다. 전염성 콜레라가 런던 전역에 확산하면서 14,000여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3년 후 또 한 번의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10,000여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어 공동묘지는 시체로 넘쳐났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 런던은 중세시대 흑사병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30여 년에 걸쳐 3만 명 이상이 전염병으로 죽습니다. 런던의 오염된 용수를 통해 콜레라균이 번식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정보는 공학자 조셉 마젤라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는 획기적인 도시 계획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마젤라트의 감독하에 수천 명의 노동자는 가장 효과적인 하수처리 시스템을 건설합니다.

 



위의 모습입니다.

마젤라트의 계획은 템스강의 양쪽 측면에 강물과 평행하게 각각 분리된 하수관을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하수관은 2,090km의 런던의 옛 하수구와 연결돼 오수가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오수를 런던 밖으로 내보내는데 가능한 한 중력의 원리가 사용됐습니다. , 경사를 이용해 오수가 흘러가도록 설치했습니다. 마젤라트는 중력만으로 유속을 유지할 수 없는 지역에는 거대한 양수 장치를 설치했습니다. 거대한 증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양수기를 통해 다시 중력으로 흘러갈 수 있는 곳까지 오수를 끌어 올렸습니다.

하수관을 통해 모인 오수는 2개의 대형 저수조에 저장되었다가 만조 때 북해로 방출되어 자연적으로 처리되도록 하였습니다.

런던의 하수처리 시스템은 19세기 기술의 신기원 중 하나입니다. 자그마치 3억 장의 벽돌이 사용된 거대한 공사였습니다. 실로 놀랍고 획기적이며 효과적인 계획이었습니다.

획기적인 도시공학적 성과 덕분에 런던은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메트로폴리스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유럽의 나라들은 앞다퉈 런던의 도시 계획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문제는 전염병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런던의 인구과잉은 너무 심각했습니다. 그 폐해는 전염병뿐만 아니라 교통체증 도였습니다. 보행자와 사륜마차, 건초더미, 기계, 수레 모든 것이 뒤엉켜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템스강의 유일한 교량인 런던 브릿지는 극심한 체증으로 런던은 마치 자신이 이룩한 성공에 막힌 느낌이었습니다. 런던에는 또 다른 다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다리를 지으면 템스강을 이동하는 상선의 길이 막힙니다. 런던에서 필요한 것은 움직일 수 있는 가동식 교량이었습니다.

런던에 건설한 가동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의 교량으로 타워 브릿지로 명명되었습니다. 견고한 강철을 심은 석재교량은 근처의 런던 타워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타워브리지는 증기의 힘으로 교량을 위로 올려 강 길을 열 수 있습니다. 1분 만에 열린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다리가 위로 올려져 배가 지나갈 수 있는 뱃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이 타워브리지 모습입니다.

400명 이상이 동원된 타워브리지 건설에는 8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오늘날 타워브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특징적인 다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놀라운 기술적 발전과 건설 사업을 장려했던 앨버트 공은 1861년 세상을 떠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충격을 받는데요. 그래서 칩거에 들어갑니다. 이후 10년간이나 여왕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마침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여왕은 전보다 더 강인하고 강력한 통치자로 변모하였습니다.

여왕은 자신이 철없는 10대에서 근세의 위엄 있는 군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대영 제국의 통치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였습니다.

세계 곳곳에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곳곳에서 여왕을 찬양하는 행사가 열렸고 심지어 식민지의 국민까지도 여왕을 숭배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 제국의 힘과 영광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상합니다. 그녀의 치세는 세계를 제패한 대영 제국의 절정기로 평가합니다. 대영 제국은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4억 명 이상이 영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영국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제국이었습니다.

이상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조선도 저런 공학 기술의 중요성을 좀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공학 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세계에서 선도하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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