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 멸망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아즈텍 문명은 1200년도쯤부터 시작되었고 멸망은 1521년 이루어졌습니다. 아즈텍 문명이 있는 동안 아즈텍 문명은 중앙아메리카의 절대 권력이었는데요. 스페인에 의해 아즈텍 멸망을 합니다. 여기서는 스페인이 처음에 중앙아메리카에 와서부터 아즈텍 멸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멕시코시티입니다. 멕시코의 수도인데요. 아즈텍 문명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이 있던 자리입니다.
아즈텍 문명은 연락병이 있었는데요. 릴레이 달리기하듯 긴 거리를 사람이 교대로 뛰어가며 소식을 전달해 아즈텍 문명의 중심부에서도 먼 거리의 소식들을 빨리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연락체계를 통해 스페인 군함들이 오는 것을 아즈텍 문명 중심에서도 빨리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함선은 아즈텍 문명에 없는 것인데요. 그들은 함선을 본 적이 없어 그것을 설명할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즈텍인들은 배를 ‘떠다니는 산’으로 묘사했습니다.
1519년 코르테스는 11척의 떠다니는 산과 500명의 선원, 50필의 말과 함께 테노치티틀란(아즈텍 문명 수도)으로부터 남동쪽으로 320km 떨어진 멕시코만에 다다랐습니다. 당시 아즈텍 문명은 석기 문명이었는데요. 그래서 무기도 흑요석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코르테스의 스페인 사람들은 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철기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부족민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지닌 금속 무기와 생소한 동물들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코르테스는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반항하는 부족민들을 무참히 살해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족민들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기꺼이 식량과 인력을 제공하였습니다.
코르테스 일행에게 아첨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그들에게 여자들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하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성을 제공하는 매춘부로 이용됐습니다.
원주민들의 여자 중 코르테스에게 유독 눈에 띄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라 말린체인데요. 추장의 딸이었지만 노예로 팔려 온 상황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관계가 되었고 코르테스와 라 말린체 사이에 아들까지 태어났습니다. 혈통이 혼합된 신대륙 최초의 인물입니다.
라 말린체는 단순한 코르테스의 아내가 아니라 훌륭한 통역가였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코르테스와 아즈텍의 중재자 역할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통역에 그치지 않고 코르테스가 미처 생각지 못한 내용까지 모두 말해주었습니다.
몬테수마 2세는 릴레이 정보 소식통을 통해 정복자들의 움직임을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정복자들은 몬테수마 2세의 도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1519년 여름 테노치티틀란으로 진격할 무렵 코르테스는 수천 명의 병력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몬테수마 2세의 병사들은 수십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짐승의 갑옷을 입고 적을 위협하였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짐승 갑옷을 입은 전사들은 정말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들 중 가장 중요한 기사의 군사들은 재규어와 독수리의 갑옷을 입었습니다.
코르테스와 몬테수마 2세의 첫 대면은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신대륙에서 조만간 큰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1519년 가을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마침내 말로만 듣던 아즈텍의 아름다운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합니다. 처음 테노치티틀란을 목격한 스페인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대규모의 원주민 전사들이 아즈텍에 대항해 도시로 향하는 코르테스 무리에 가담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코르테스와 몬테수마 2세의 만남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스페인은 철기 무기류나 갑옷이지만, 몬테수마 2세는 석기 무기입니다.
테노치티틀란에서의 코르테스와 몬테수마 2세의 첫 대면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난 순간입니다. 코르테스는 악수를 청하려 몬테수마에게 손을 뻗는 순간 몬테수마의 보좌관들이 코르테스를 저지했습니다. 아무도 위대한 황제인 몬테수마의 몸에 손을 대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몬테수마의 신경질적인 성격과 히스테리는 심해지고 있던 상황입니다.
몬테수마 2세는 스페인인들을 그의 궁전 한곳에서 머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정복자들은 화려한 경관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도시의 중심에 거대한 황제의 궁전이 있었습니다.
성에 입성한 정복자들은 1주일도 되지 않아 몬테수마 2세를 납치하며 전면전에 돌입합니다. 몬테수마 2세는 여전히 공식적인 황제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코르테스의 포로 신세가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테노치티틀란의 갈등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1520년 봄 분노는 마침내 폭발합니다. 어느 날 아침 스페인 정복자들이 인신 공양을 하는 아즈텍 인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단입니다. 아즈텍인들은 스페인인들의 행동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했습니다.
아즈텍의 군사들이 몬테수마 2세의 궁전으로 행진하면서 도시는 술렁였습니다. 몬테수마 2세는 궁전 위로 올라가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정복자들의 꼭두각시가 된 몬테수마 2세에게 분노가 폭발한 아즈텍인들은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얼마 후에 죽은 몬테수마 2세의 시신이 궁전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스페인인들이 죽인 것인지 아즈텍인들이 죽인 것인지는 모릅니다.
스페인인들은 이제 도시를 떠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1520년 6월 30일 밤 스페인인들은 어둠을 틈타 도시를 떠날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놓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실었습니다.
아즈텍인들은 도로를 통해 달아나는 스페인인들을 공격했습니다. 도로 위에는 순식간에 시체들이 쌓여 갔습니다. 수천 명의 인디언 동맹군과 400여 명의 스페인 정복자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이날의 사건을 ‘슬픈 밤’을 뜻하는 ‘노체 트리스테’라고 부릅니다.
코르테스와 일행 몇 명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파괴할 계획을 세웁니다.
코르테스는 우선 도시의 생명줄 같은 수로를 절단합니다. 도성 안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코르테스는 도시를 봉쇄해 외부로부터 식량 공급을 봉쇄하였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결국 항복하도록 유도하려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즈텍은 끝까지 저항했고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페인인들은 수륙 양쪽에서 공격을 개시하기로 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테노치티틀란을 둘러싼 호수는 방화벽의 역할을 했지만, 코르테스는 그의 전함들을 분해해 이동한 다음 테노치티틀란 호수에서 재조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라고 지시합니다.
100명의 기병대를 포함한 600명의 스페인군과 50,000명이 넘는 인디언 동맹군은 도시의 대도로 위에서 격돌합니다. 잔인한 싸움은 수개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코르테스는 도시의 모든 지역을 차례대로 파괴해 갔습니다. 그의 군사들과 인디언 동맹군들은 아즈텍의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파괴해 갔습니다.
아즈텍은 툴라텔의 대신전에서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전사들은 가파른 계단 위에서 적을 향해 화살과 돌을 날일 태세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참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8월 13일 아즈텍의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은 결국 코르테스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위의 사건보다 더 큰 것은 스페인인들에게 전염병이 옮아 아즈텍 문명 2천만 명이 병으로 죽습니다. 16세기 말엽 원주민의 인구는 기존의 10%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상 아즈텍 멸망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이래서 다른 세상과 교류를 꼭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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