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2세 와 무와탈리2세의 카데시 전투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람세스2세의 이집트군과 무와탈리 2세의 히타이트군이 격돌했던 전쟁이 바로 카데시 전투입니다. 카데시 전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세히 기록된 전투입니다. 6천 대가 넘는 전차병이 참여한 전투의 규모는 현대 기준으로도 엄청난 수준입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큰 국가 간의 전면전 같은 전투였습니다. 기원전 1274년 개전하였습니다
위의 빨간원이 카데시 지역의 위치입니다.
람세스2세의 이집트군과, 무와탈리2세의 히타이트군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 수준의 무기를 선보였습니다.
일찍이 권좌에 오른 람세스2세에게 이집트 국경을 넘보던 주변의 신흥 강대국 히타이트는 반드시 넘어야 할 운명의 맞수였습니다.
람세스2세는 당시 고대 이집트 제국을 수호하면서, 조국의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람세스2세에게는 이집트의 국경 수호가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이집트에 풍요와 번영을 선물해줬습니다. 수천 년간 이집트는 이런 자연의 혜택을 아낌없이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지중해 동부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주변 외세의 침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기근이 들면 이집트를 찾아가라고 할 정도로 이집트는 당시 먹을 것이 풍족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니 군침 흘리고 있는 외세가 많았습니다.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는 자신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주변국과 맞서기 시작합니다. 그 강력한 적수가 바로 히타이트 제국이었습니다.
람세스2세의 이집트 제국과 무와탈리2세의 히타이트 제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맞수였습니다.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히타이트 제국은 오늘날의 터키 지역을 호령했으며, 동쪽으로 유프라테스강과 남쪽으로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시리아 지역을 복속시켰습니다. 기원전 1900년경부터 역사책에 등장하는 히타이트 제국은 그 후 700년 가까이 강대국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위의 사진이 만곡도 모습입니다.
히타이트는 조직과 훈련이 잘된 막강한 대군을 보유했으며 정책적으로도 군을 집중하여 육성했습니다. 히타이트군은 만곡도라는 낫 모양의 검을 주력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낫 모양 안쪽으로 적 방패를 끌어내는 등 그냥 일자 검보다 활용도가 높았습니다.
이집트인의 중요한 실책 중 하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군대 조직을 방치한 것이며, 더불어 무기 성능도 현저히 뒤떨어졌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수천 년간 늘 군사적 우위를 지켜왔기 때문에 따로 무기 개발에 힘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타이트의 등장으로 람세스2세의 이집트군은 무기를 개량하기 시작합니다.
원대한 야망을 품었던 람세스2세는 기존의 영토 수호는 물론 제국 확장에도 힘을 기울이고자 노력했고, 이를 위해 주변 적국에 뒤지지 않을 군대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중동의 신흥 강국 히타이트는 이집트 국경을 침공하며 이집트의 무역로를 가로막았습니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람세스2세는 당시 적군을 생포하고 적군 무기를 만들게 하여 이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이집트군이 사용한 도끼 모습입니다. 금속으로 된 갑옷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기원전 1720년경 주변 적국과 싸우면서 그들의 무기를 보고 배워 자신들의 무기체계로 개량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전차와 도끼, 복합궁이 대표적인 무기입니다.
람세스2세의 이집트군은 히타이트 제국과의 전투에서 평원 경계에 주둔지를 세웠지만 무와탈리2세와 히타이트 군대는 은밀히 반대편 언덕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였습니다.
좋은 기회를 잡은 무와탈리2세는 2,500여 명의 보병부대에 이집트 주둔지를 공격하게 명령했습니다. 히타이트군이 언덕을 넘을 무렵 또 다른 1,000여 명의 이집트 부대가 도착했지만, 히타이트군은 검을 휘두르며 대부분의 이집트군을 죽였습니다.
첫 승전보를 울린 히타이트군은 여세를 몰아 이집트군 주둔지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람세스2세가 부대를 데리고 히타이트군에 맹렬한 반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집트의 고속 전차에 쫓기던 히타이트군은 원래 주둔지까지 퇴각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이 전차의 모습입니다. 말이 끄는 수레에 타서 활을 쏘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이집트군의 사기가 충전했는데요. 카데시 전투가 절정에 이를 무렵에는 6,000대의 전차가 전쟁에 투입되었고, 20,000여 명의 병사가 최첨단 무기로 전투를 벌였습니다.
카데시 전투가 광활한 평원에서 진행되자, 전차 부대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람세스2세는 히타이트군을 물리쳤습니다. 이집트군은 히타이트군을 강 건너로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2세는 자신들의 정비를 먼저 하기로 하는데요. 그래서 이집트를 상대로 정전을 선언합니다.
람세스2세는 카데시를 이집트군으로 포위했지만, 곧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히타이트는 물러서지 않을 테고, 포위 공격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람세스2세는 스스로 승전을 선언하고 금의환향했지만, 실제로는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휴전 협정을 맺은 것입니다.
카데시 전투는 람세스2세의 대승이라고 보긴 힘들며, 현재는 무승부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람세스2세는 이 전쟁을 자신의 대승으로 철저히 미화시켰고, 이로 인해 이집트 국민은 한결같이 람세스2세를 가장 위대한 군사 지도자로 추앙했습니다. 또한 람세스2세는 방방곡곡에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는 신전을 세웠고 고대의 패권자의 지위를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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